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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비행장이 5개가 있었다. (알뜨르 비행장과 결7호 작전)

마이홈주의자 2022. 3. 25.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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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섬 제주도.
우리나라에서 일본군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 또한 제주도이다.
제주도에 과거 비행장이 5개가 있었다니.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알뜨르 항공기지.
정뜨르 비행장.
진드르 비행장.
교래리 비행장.
그리고 서귀포 비행장까지.

위치가 어디인지 하나씩 보자.
알뜨르 해군 항공기지는 모슬포항과 송악산 중간 지역이다.
정뜨르 비행장은 제주 국제공항이 위치한 곳이다.
진드르 비행장은 조천읍 신촌리 일대이며 진드르 교차로 등의 지명이 현재도 사용 중이다.
교래리 비행장은 현재의 대한항공 정석비행장이 위치한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귀포 비행장은 현재의 서귀포 시청 근처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알뜨르 비행장과 정뜨르 비행장(제주 국제공항) 그리고 정석비행장(대한항공 정석 비행훈련장)이다.
5개의 비행장중 진드르(진뜨르) 비행장은 현재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서귀포 비행장은 제주4.3당시 건설된 것으로 당시 경비행기를 이용, 산악지대를 관찰했다고 하지만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나머지 4곳의 비행장은 알뜨르 비행장을 시작으로 모두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당시에 건설되었는데 이중 알뜨르 비행장이 가장 먼저 건설되었다.
알뜨르 비행장은 제주도 '항공기지'였다. 명칭에 대해 '항공기지'와 '비행장'이 혼용되는데 이유를 알 필요가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은 육군과 해군만 존재했다. 육군도 해군도 모두 전투기를 운영했는데 육군은 '비행장'이라고 했으며 해군은 '항공기지'라고 불렀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당시의 일본 육군과 해군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육군과 해군이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비행장도 따로 만들어 가지게 된다.
알뜨르 비행장은 해군의 것이었으며 나머지 3개의 비행장은 육군 소속이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3월 제58군 사령부가 들어와 '본토결전' 준비를 하기 전까지 제주도는 일본 해군의 관할이었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건설된 '제주도 항공기지'인 알뜨르 비행장도 일본 해군에서 건설한 것이다. 1933년경 착공. 1935년경 비행장이 완성되었으며 불시 착륙장으로 이용하였다. 1937년 중일 전쟁 시기에 제주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게 된다. 처음 6만 평이었던 알뜨르 비행장은 20만 평으로 확장하게 된다.
중일 전쟁으로 일본 해군에서는 나가사키의 오무라 해군 항공기지에서 중국으로 폭격기를 출격시켰다. 하지만 거리상 폭격 후 나가사키로 돌아올 수 없었던 탓에 제주도 알뜨르에 착륙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난징, 상하이에 대한 폭격의 거점으로 알뜨르 비행장이 이용되었다.
1937년 11월 상하이를 점령한 후 이곳에 비행장을 건설하게 되면서 나가사키에 있던 오무라 항공대가 상하이로 이전한다. 그리고 알뜨르 비행장에는 오무라 항공대의 연습 항공대가 설치 운영되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고 전쟁 말기로 가면서 제주도는 다시 한번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주목을 받게 된다. 제주도의 알뜨르 비행장은 이미 한 번의 확장으로 20만 평이었던 것을 60만 평을 더해 80만 평으로 확장하게 된다.(당시 나가사키의 오무라 해군 항공기지가 80만 평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80만 평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패전했고 실제 사용되지는 못했다.

일본 육군에서는 별도로 정뜨르 비행장과 진드르 비행장을 건설하게 된다.
정뜨르 비행장은 일본 육군 서비행장으로 불리었다. 1942년부터 건설되어 1944년경에 건설되었다.
진드르 비행장은 일본 육군 동비행장으로 불리었다. 건설된 때는 정확히 특정되는 자료가 없다.

진드르 비행장은 활주로 1개는 거의 완공된 상태에서 공사를 갑자기 중단하고 지시를 받아 중산간의 교래리 부근에 비밀 비행장을 만들게 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카미카제 특공대가 사용하는 특공 비행장이다. 활주로는 1천미터, 9백미터짜리 두 개의 활주로를 가졌다. 병사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동굴진지. 연료 400통 분량을 보관할 수 있는 동굴, 탄약 5톤분과 비행기 격납 동굴 12기 등을 계획하여 1945년 7월에 완성되었다.

이러한 확장은 1945년 3월 말에 발령된 '결호 작전'으로 최고점에 이르게 된다.
1945년 3월 이오지마 함락. 3월 10일 도쿄 대공습
1945년 3월 26일 게라마 제도 상륙
1945년 4월 1일 오키나와 상륙
이와 같이 미군은 일본 본토를 향해 다가오게 되면서 일본은 전쟁 패배를 인식하게 되는데 본토인 오키나와까지 미군이 상륙하게 되자 미군의 다음 계획을 감안하여 7개의 본토 결전 작전(결호 작전)을 만들었다.

결1호 : 홋카이도
결2호 : 혼슈 동북부
결3호 : 혼슈 간토 지방
결4호 : 도카이, 호쿠리쿠 지방
결5호 : 간사이, 시코쿠, 주코쿠
결6호 : 큐슈
결7호 : 한반도 남부와 제주도
특이하게도 결7호 작전이 일본 본토가 아닌 제주권이 본토 결전 계획에 포함된 것이다. 미군이 제주도에 상륙해서 비행장을 이용하여 폭격기를 운영할 것이라는 예상에 따른 것이다. 그만큼 제주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제주도에는 1944년 6월 기준 약 300여 명의 일본군이 전부였다. 1945년 3월 말 일본군의 숫자는 약 3천 명으로 늘어난다. 2달 뒤인 5월 말에 10배가 넘는 3만 6천의 병력이 제주도로 배치되었다. 1945년 8월에는 제주도에 주둔하는 일본군은 8만 명이 넘었다. 당시 제주도민이 23만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의 군인들이 제주도로 들이닥친 것이다.
원래 한반도는 제17방면군 산하였는데 1945년 3월 제58군이 새롭게 편성되었고 제주도는 제58군이 독자적으로 방어를 할 수 있도록 모든 자원이 동원되었다. 관동군 전차부대까지 제주도로 동원되었다.

결7호 작전에 따라 많은 수의 제주도민을 포함한 민간인이 동원되었고 비행장 시설뿐만 아니라 제주도 전체에 걸쳐 군 시설들을 지하화 하는 작업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전라남도 지방의 탄광에서 일하는 많은 분들이 제주도로 끌려왔다. 단시간에 진지를 축성해야 하는 만큼 일본군은 엄청난 노동력 착취를 해가면서 제주도를 요새 화하는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비행장 근처의 다양한 시설물들과 특히 제주도에 엄청나게 많은 동굴 진지들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들이 희생되었다.

이와 같이 태평양 전쟁 말기 패전을 예감하던 일본의 결7호작전에 따라 아래의 알뜨르 비행장을 비롯하여 제주도 전역에 걸쳐서 거대한 군사 기지가 지하에 건설되었고 제주도 전체가 요새화 되었다. 대부분의 시설이 1년도 안된 기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단기간에 걸쳐 이렇게 많은 시설이 구축되었으니 이 일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얼마나 혹독한  조건에서 일했을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조성윤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 어디에도 알뜨르 비행장과 같이 2차 대전 당시의 비행장과 부속 시설들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곳이 없다고 한다. 알뜨르 비행장과 주변 시설물이 이렇게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이곳이 국방부 소유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1988년 정부는 이곳에 공군 비행장을 건설하려 했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가꾸어 가기 위해 제주4.3이 중심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동시에 일본의 태평양전쟁의 최후 결전의 장소로 여겨졌던 제주도 일본군 시설들도 평화를 위한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서 이용되어야겠다.

* 제주올레 10코스를 걸으면 송악산 동굴진지, 셋알오름 고사포진지, 섯알오름 탄약고터(제주4.3유적),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급수탑, 알뜨르비행장 지하벙커를 모두 볼 수 있다.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한곳에 당시의 제로센 전투기 모양의 설치 미술을 볼 수 있다.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한곳에 당시의 제로센 전투기 모양의 설치 미술을 볼 수 있다.
알뜨르 비행장. 급수탑에 오르면 알뜨르 비행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알뜨르 비행장. 급수탑에 오르면 알뜨르 비행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알뜨르 비행장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급수탑에 올라야 한다. 높이가 꽤 되고 계단도 가파르고 무섭다.
올라가서야 넓게 펼쳐진 알뜨르 비행장이 눈에 들어온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급수탑은 태평양전쟁 당시의 구조물이 아니다. 예전에는 알뜨르 비행장의 관제탑이라고 잘못 알려졌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의 비행장은 관제탑이 없었다.
그리고 이곳 알뜨르 비행장 부지는 한국전쟁 당시 육군의 제1훈련소로 사용이 되었는데 이후에 지어진 급수탑이라고 최근(2010년대)에 와서야 밝혀졌다.

알뜨르 비행장 급수탑. 태평양전쟁 당시의 건축물이 아닌 한국전쟁당시 육군 제1훈련소의 급수탑이다.
알뜨르 비행장 급수탑. 태평양전쟁 당시의 건축물이 아닌 한국전쟁당시 육군 제1훈련소의 급수탑이다.



* 참고
. 제주대 조성윤 교수 논문 - 알뜨르 비행장 : 일본 해군의 제주도 항공기지 건설 과정
. 츠카자키 마사유키 논문 - 제주도에 있어서 일본군의 본토 결전 준비
이 논문의 번역본이 2004년 발행된 '4.3과 역사 제4호'에 실리면서 제주의 일본군 진지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 KBS 역사추적 - 제주 동굴진지의 비밀 1부. 결7호 작전, 제주도를 사수하라.
. KBS 역사추적 – 제주 동굴진지의 비밀 2부. 자살특공기지를 구축하라

* 관련 글
제주4.3 평화기행 1일차 - 다크 투어
제주4.3 평화기행 2일차 - 다크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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